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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만나다/09 Philippines

기간테스(Gigantes)

 어학원에서 생활한지 한 달이 되어갈 무렵, 같이 생활하면서 친해진 동생들에게 "기간테스"라는 곳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직 개발이 덜 되어 때뭍지 않은 자연의 모습과 순박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고, 많이 상업화 되지도 않은 곳이라 비용도 저렴하다며 꼭 가보라고 추천을 받았다. 하지만 가는 길이 좀 험난해서 어학원에서 버스터미널로 이동 후 버스로 3시간 이동, 그리고 선착장에서 배로 2시간 이동해야 도착할 수 있다는 말에 쉽사리 엄두가 안 났었는데, 이미 기간테스에 다녀온 적이 있던 '로빈'의 도움과 원장님의 추진으로 다른 학원생들과 같이 다녀올 수 있게 되었다. 모든 예약과 총무를 로빈이 담당하고 마지막에 합류한 남자 막내 마리오와 원장님까지 남자 네 명, 그리고 아내와 윤주, 민주, 비키, 세나씨까지 여자 5명 총 9명이 다녀온 여행이었는데 시작부터 돌아올 때 까지 참 즐거운 기억이 되었다.

   



예약한 밴으로 선착장이 있는 에스탄시아(estansia)로 이동 중 선착장 근처 식당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치킨 BBQ와 파스타 등을 시켰는데 저렴한 가격에 비해 의외의 맛이 좋아 돌아오는 길에 다시 한 번 들렀다.




점심 식사 후 향한 선착장.

기간테스로 왕복하는 배는 하루에 한 척 밖에 없단다. 저 배는 현지어로 '방카'라고 하는데 우리도 설마 저 배로 들어가게 될 줄은 몰랐다. 알고 있는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음에도 사람이 이미 많이 타고 있었다. 솔직히 망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외국인들이 탄다고 조금씩 비켜서 자리를 내주어 나와 아내는 옆으로 앉아서 갈 수 있었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바닥에 앉거나, 원장님과 로빈은 음료수 박스 위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 우리가 탄 이후에도 사람들이 계속 배에 올라타서 배가 가라앉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된 즈음에 출발을 하더라. 벌써부터 돌아오는 일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좁은 배와 망망대해, 그리고 파도에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할 무렵 조그마한 모래섬과 그 위에 집 한 채가 나타난다. 다들 갑자기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


그렇게 가다보면 어느새 기간테스 섬이 보이고 바다에서 수영하는 아이들이 먼저 관광객들을 반긴다. 육지와 두 시간여 떨어진 섬이고 저녁 때만 전기가 들어와 밤 11시 쯤이되면 그마저도 끊기다 보니 섬에서 먹을 것들은 미리 준비해서 사가는 편이 좋다. 리조트에서 식사 및 숙박은 제공되지만 간식거리 및 물, 음료 등은 사가는 것이 더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배에서 내리는 사람들 모두 양손 가득 짐을 들고 한 방향으로 이동한다.




더운 날씨에 리조트 이름도 모르고 무작정 한 방향으로 걷던 우리는 결국 길에서 주민들을 만나 무작정 '리조트'를 물었고, 이름도 이야기 하지 않았는데 다들 우리가 가던 방향을 가르키며 더 가야 한다고 알려주더라. 그렇게 한참을 더 걸어 만난 리조트. 배에 있던 관광객들이 다 여기에 묶는 듯 했다.




마당에 자리한 커다란 나무와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나무 위의 오두막, 그리고 나무에 매달린 그네. 그 더위에도 불구하고 다들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우리가 묵을 방을 준비하는 동안 내어준 웰컴티. 저 커피는 무지무지무지 X 10하게 달아서 저거 한 봉지로 두 잔을 먹을 수 있었다. 얘들 무지하게 달고 짜게 먹는다. 여행다니면서 느끼는 거지만 왜 자꾸 한국 사람들이 짜게 먹는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배정된 우리의 방

리조트 입구 건너편 바다 쪽에 방 2개짜리 건물 한 동이 있었는데 우리에게 내어 줬다. 우리는 방 앞에 테이블이랑 의자 내어놓고 우리 마당으로 썼다.

이렇게 숙박 2박, 식사 5끼, 다음 날 아일랜드 호핑, 왕복 배편까지 리조트에서 패키지로 예약이 가능하다.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보니 리조트에서 근처에 있는 등대로 투어를 시켜 준단다. 등대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어 오토바이로 이동해야 한다며 우리 숙소 앞에 오토바이 5대가 대기. 오토바이 한 대에 두 명씩 얻어타고 동네를 신나게 달려 등대로 향했다. 좁은 골목길을 아슬아슬 지나며 '하이'와 '헬로우'를 외치는 아이들과 인사하다보면 어느새 등대에 도착하게 된다. 귀여운 아이들의 '하이'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돈다.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건물 뒤편으로 등대가 보인다. 우리가 도착하고 구경하기 시작하자 멀리서부터 동네 아이들이 슬슬 모여들기 시작했다.




내가 카메라를 사용할 때 아내는 동영상 담당이다. 빨리 동영상 편집도 공부해야 할텐데...라고 네 달째 속으로 생각만 하고 있다.





폐허를 돌아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 두 어 시간이나 바다 위를 달려왔지만, 멀찍이 떨어져 섬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또 무언가 느낌이 다르다. 




당연히 폐허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새삼 사진을 보니 다른 포즈를 연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페허 안으로 보이는 창과 빛이 내부와 대조적으로 예뻐서 아내한테 부탁한 사진. 




폐허 사진 매니아다.




우리 가이드가 찍어준 단체 사진. 포스팅 직전 비키씨한테 얻었다. 원장님 표정ㅎㅎㅎ




단체 사진을 찍은 후 경치를 보러 등대로 올라갔다. 내부에 저런 계단을 통해 올라가면 꼭대기에서 기간테스를 상당부분(전부는 아님) 내려다 볼 수 있다. 위에서 내려다 보는 바다의 에메랄드 빛 색과 노을지기 시작하는 하늘, 그리고 마을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서 느꼈던 약간의 답답함과 가빠진 숨도 올라가면서 맞이하는 상쾌한 바다바람에 한 순간 사라졌다.




이런 곳에 데리고 와 준 로빈이 새삼 고맙게 느껴지던 풍경




세나, 민주, 윤주, 로빈, 아내




그리고 빠지지 않는 셀카




어느 곳에서,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같은 풍경도 달라질 수 있다.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라면 어느 곳이든 특별하다.




그리고 고소공포증을 호소하며 위로 올라오지 못 한 두 명은 밝은 얼굴로 아래에서 우리를 기다렸다.




등대에서 내려와 입구도 향했더니 어느새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마닐라나 세부에서처럼 돈 달라고 하는게 아니라 그저 인사에 대답해주고, 사진 찍어주고, 하이파이브 한 번 해주면 엄청나게 좋아한다. 순수하고 순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좋았던 아이들.  



그리고 다시 오토바이 뒤에 타고 신나게 돌아온 숙소에서 맞이한 저녁식사. 리조트에서 제공하는 저녁은 간단하지만 정갈하고 정말 맛있었으며, 식사 내내 화기애애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신 원장님 덕분에 함께 웃으며 식사를 마치고 우리 방 앞에 돌아와 술판을 벌였다. 전기도 없이 핸드폰으로 조명을 비추며 조용히 음악을 틀어놓고 도란도란 모여앉아 얘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다 보니 생각보다 과음을 했다. 덕분에 밤새 모기에 물려도 깨지 않고 숙면의 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7시 반경 준비해 아침을 먹고, 이곳에서의 메인 일정인 아일랜드 호핑을 기다리는 일행들. 아일랜드 호핑은 작은 방카를 타고 근처에 있는 섬을 돌며 구경하는 것을 말한다. 섬에 일정시간 머물면서 수영도 하고 구경도 할 수 있으며 원래는 동굴에 가는 일정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우리는 동굴은 안가겠다고 일정에서 빼버렸다. 




우리 일행들과 배를 운행하는 선장, 그리고 일정 내내 우리 일행을 담당하며 식사 준비, 호핑안내 등을 해준 Mr.알과 함께 첫 번째 섬으로 가는 길. 세나씨 카메라로 알이 사진도 찍어준다. 여행내내 알한테 도움을 참 많이도 받았다. 필요한 것만 있으면 "알~"하고 불러서 부탁을 하면 척척 해결해주다보니 나중에는 모두다 알 앓이.




꽤 서둘렀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섬에는 이미 누군가가 와 있었다. 도착해보니 리조트 사장님과 다른 손님. 사장님은 일정 내내 우리보다 한 발 앞서 도착해 있다가 우리가 다다르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저 앞에서 손 흔드시는 분도 사장님이다.

기간테스 주변 바다는 물이 참 맑고 깨끗해서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 물고기는 별로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렇게 맑은 바다를 보면 뛰어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긴 모래톱 형태의 섬 양쪽으로 바다가 있는데 한 쪽은 깊지 않아 무릎 정도의 깊이고 다른 쪽은 들어가자마자 확 깊어진다. 수영 잘하는 일행들은 보자마자 참지 못하고 풍덩!





단체 사진에서 빠질 수 없는 점프샷. 첫 샷을 찍고 나서 바다가 안 보인다는 이유로 자리를 옮겨 다시 촬영. 





우리가 점프샷 찍는 걸 보고 어디선가 또 우르르 몰려 온 아이들. 원장님이 같이 뛰면서 사진 찍자고 얘기하니 이내 웃으며 점프샷을 시도하는데 타이밍이 다 다르다. 그래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 소리가 섬을 가득 채우고 쳐다보는 우리 일행도 함께 미소를 지었다. 이 사진이 꽤 마음에 드셨는지 다시 방문하게 되면 원장님이 사진 인화해서 아이들에게 주시겠단다.





첫 번째 섬에서의 짧은 물놀이를 마치고 두 번째 방문한 섬.

저 위의 야트막한 산? 언덕?을 올라가는 작은 섬의 전경을 볼 수 있다. 




아름다운 풍경. 저 바다 색은 정말 어떻게 나오는 것인지...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바다를 볼 수 없는지 항상 아쉽다.




간만에 남이 찍어 준 커플사진. 썬크림을 엄청 발라댔더니 얼굴이 허옇다.

위에서 경치 구경하고 사진 찍고 내려와서는 갑자기 앞에 보이는 야자수에 한 명씩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무슨 정글의 법칙 찍는 줄. 진짜 함께 있으면 심심할 틈을 안 주는 사람들이다.




다음 섬에 도착해서 맞이한 점심시간. 리조트에서 아침부터 준비해 온 식사를 우리의 알이 준비하는 중이다. 맥주와 콜라는 섬에 도착해서 작은 구멍 가게에 구입하고 음식이랑 식기류는 전부 준비해서 왔더라. 분위기와 물놀이 후의 배고픔 때문이 아니라 저 점심이 진짜 맛있었다. 나는 별로 게를 즐기지 않는 사람이라 먹지 않았지만 사진 속의 게도 엄청 실하고 맛있다는 증언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크기는 크지 않은데 살이 꽉 차서 양이 엄청 많다더라. 아...저는 게맛살과 대게 맛을 구별 못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안 먹...




이 섬에서는 스노클 장비(물안경, 스노클)를 대여할 수 있다. 그래서 다들 점심을 먹고 스노클링을 하기로 결정. 

이미 현지인 수준으로 까맣게 탄 로빈도 스노클링을 대비해 썬크림으로 마스크 팩을 해서 일행을 즐겁게 해주었다. 맑은 물에 비해 물고기는 별로 없더라. 이럴 때 마다 몰디브가 그립다. 바로 앞바다에도 커다란 가오리가 헤엄쳐 다니던 몰디브... 언제 다시 갈 수 있을까? 기승전 몰디브.




마지막 목적지 라군. 섬 안쪽에 바닷물이 고여 천연 수영장이 형성 되어 있는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로빈이 지난 번 왔을 때는 주변 수위가 높지 않아서였는지 라군에 물이 차지 않아 볼 수 없었다던데 이번엔 운이 좋왔나 보다. 들어갔다 온 다른 일행들의 말에 따르면 고인 물이라서 그런지 부유물이 조금 있고 따뜻하단다. 반대편에서 보는 경치가 좋다던데 들어가볼껄 그랬나?





라군 구경을 마치고 우리 배로 돌아오는 길에 현지인들이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라고 꼬셔댄다. 겁 없는 로빈과 비키가 도전했다. 로빈은 덤블링으로 비키는 심청이 포즈로... 일행들이 멋지게 배로 돌아오고 나서 중국인 한 명이 절벽에 섰는데 겁이 나는지 뛰지를 못하더라. 올라가면 엄청 높아 보이나부지?


원래는 마지막이 라군이었는데 알이 스몰 라군도 보여준다며 한 군데로 더 데려갔다. 동네 욕탕만한 사이즈의 라군이었는데 조금 신비한 분위기였다. 절벽으로 올라가는 길이 험난해서 카메라를 배에 놓고 간 관계로 사진이 없다. 카메라는 소중하니까요.



그리고 숙소로 돌아와 다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저녁을 기다렸다. 어느 덧 하루가 지고 슬슬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샤워를 하고 다들 수영복을 널어놓고 쉬고 있는데 또 동네 아이들이 몰려들었다. 포토포토 하면서 사진을 찍어 달란다. 카메라를 향하니 바로 포즈를 취한다. 찍은 사진을 보여주니 어찌나 좋아하던지... 몇 장을 찍고 나서도 계속 우리 주위를 맴돈다. 그저 자신과 다른 우리들이 신기한가보다.








하늘이 물들기 시작했다.




파노라마





저녁을 먹기 전 잠시 시간이 남아 나갔던 동네 산책. 관광지가 아닌 그냥 시골 어촌 마을의 느낌이다. 동네 사람들 모두 이방인들을 웃음으로 대하고 우리가 묵었던 리조트를 제외하고는 관광과 관계 없이 자신의 생계를 꾸려가는 곳. 이곳이 이대로 남았으면 좋겠다.




우리의 맥주 공급원




기간테스에서 마지막 저녁식사. 끼니마다 다른 메인메뉴를 선보여 줬지만 하나같이 다 맛있었다. 정말 음식 걱정은 안해도 되는 곳이다.






조개 관자요리, 가리비찜, 생선찜. 준비해간 초고추장과 함께 먹으니 더욱 맛있었던.




11시에 전기가 끊기고 난 후 사장님의 배려로 우리 놀으라고 비상 발전기까지 돌려가며 한국 노래방 기기에 전기를 공급해주셨다. 필리핀 섬에서 들리는 한국 노래!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난 후 숙소 의자에 홀로 앉아있으니 하늘에서 별이 쏟아져 내렸다. 항상 이럴 때는 삼각대가 없다. 아쉬운대로 테이블에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담아본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타고 나갈 방카는 저 멀리에 머물러 있고, 뗏목을 타고 나가서 배로 갈아타야 한단다. 들어올 때의 안좋은 기억 때문에 알한테 우리 자리 잡아달라고 신신당부를 해놨는데 이미 배는 사람으로 가득차 있고 반쯤은 가라앉아 있는 것 같다. 짜증이 밀려온다. 그런데 우리가 뗏목을 탈 때 어디선가 나무의자를 가져오더니 뗏목에 같이 싣는다. 방카에 있던 사람들을 밀쳐내머 의자를 집어넣고 우리 자리를 만들어줬다. 알 멋쟁이!

뗏목이 이동하는 바다는 그리 깊지 않아서 사람 가슴높이 정도의 수심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뗏목 위에 서 있으면 물 속에서 사람들이 밀고 끌고 방카까지 데려다 준다. 신기한 시스템! 그 신기한 광경을 담으려고 민주씨가 셀카봉을 꺼내어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눈 앞에서 핸드폰이 셀카봉에서 빠져 바다로 잠수....진짜 영화같이 슬로우 모션으로 떨어지더라. 우리 일행들, 주변 필리핀 사람들 다 난리 났는데 오히려 민주씨는 담담하다. 거진 포기하고 방카에 타고 있는데 우리의 알!이 핸드폰을 건져서 돌아왔다. 건져진 핸드폰은 운명하셨단다.....




돌아오는 배 안에서 셀카.

좋은 기억을 남겨주고 이미 한국으로 돌아간 로빈과 오늘 떠나는 우리 부부, 그리고 곧 떠나게 될 윤주씨, 민주씨, 사진에 없는 원장님, 비키씨, 세나씨, 마리오 모두 건강하길!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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